시장후보 샘윤을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윤후보의 보스톤 시의원 시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전주(全州) 의원(At-large position)으로 선출되어 연임까지 하면서 보스톤 대표로 활동하였습니다. 그의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전직 교사, 지역사회 지도자 및 주택계획 개발자이기도 한 그는 하버드 대학 케네디스쿨 행정대학을 졸업한 재원입니다. 한 여자(티나)의 남편, 또 두 자녀(나단과 나오미)의 아버지며, 창립멤버로 되어있는 교회에서 장로 직분을 지니고 있습니다.
윤후보는 그와 그의 형제들을 위해 당신들의 희생까지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이민자, 히스파닉 그리고 아시아계 이민자들처럼 윤후보의 부모님 또한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으로 이민하였습니다. 만 10개월된 간난아기인 윤후보를 데리고 한국땅을 떠나면서, 그들은 모든 부모가 자녀를 위해 원하는 양질의 교육을 그들의 자녀 또한 받을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윤후보는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재학시절 공립학교에서 대리교사로 활동하기 위해 1년 간 휴학을 하고 교사준비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졸업하고 난 후 윤후보는 대부분의 동창들과는 사뭇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이비리그 학위로 갈 수 있는 고소득 직장을 다 마다하고, 대도시의 저소득층 거주지역에서 교사로 임용됩니다. 그리고 보스톤의 모든 교사들이 그렇게 하듯, 윤후보 또한 학생들을 위해 더 헌신했습니다. 학생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비로 필요한 용품을 구입했습니다.
윤후보는 공립학교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교직을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하버드 케네디스쿨 행정대학에 진학하기로 합니다. 그곳에서 교육 개혁뿐만 아니라 경제 개발 및 저렴한 주택개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에 이릅니다. 그는 대학원생 시절 록스버리의 더들리 스퀘어 상인 연합과 일하면서 그들이 연방 정부에 의해 메인 스트리트로 지정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윤후보는 그 후로 10년동안 지역사회 기반의 소규모 비영리단체들과 일하면서 보스톤에 환원합니다. 윤후보가 처음 일한 곳은 정신병 환자들과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거처를 제공해주는 단체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커뮤니티 빌더”(지역사회 건설자)라고 하는 저렴한 주택개발자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비영리단체에 몸담았습니다. 또 그 후에는 ABT 어소시에츠라는 공공정책 두뇌집단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어떻게 해묵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 후 윤후보는 아시아계 지역사회 개발조합의 회장을 역임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비로소 지역사회 활동에 진지하게 관여하게 되지요. 지역기반 단체들과 일하면서 윤후보가 배운 것은 참 많았습니다. 그가 얻은 가장 소중한 교훈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엑셀시트 작성과 회의진행이 아닌 실제적인 조직력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또 지역사회 일원과 당선 의원들, 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하나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조직력의 핵심이었습니다.
비영리 단체들과 일하면서 윤후보는 정치인이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상당한 것과, 더 중요하게는 그와 같은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피선거인으로 잘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2005년, 그의 의사소통 및 협동 능력을 가지고 보스톤 시 전주(全州) 시의회 의원(Boston City Council At-Large) 선거에 입후보하게 됩니다.
당시 전문가들과 정치인 무리를 볼 때, 이 선거는 윤후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현직에 있는 상대에는 전직 시장의 자녀가 둘이나 있었고, 국무 장관의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정계의 내부사람들과 함께 운동을 하며 공직의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보스톤의 유권자들은 달랐습니다. 윤후보의 지역사회 참여 경험과 좋은 정부 만들기에 대한 유세는 공감을 샀고, 그의 상대들보다 훨씬 적은 투자를 했음에도 대표의장 자리를 쉽게 차지했습니다. 2년 후 재선되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스톤 시의회 의원(Boston City Concilor At Large)으로 윤후보는 그가 평생 동안 하던 일, 즉,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지역사회가 하나되게 하는 일에 앞장섭니다. 윤후보는 시민의 정부에서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시청사를 선거구민에게 더 가까운 곳으로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보스톤 시 예산책정의 과정에 대해 시민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보스톤 지역을 곳곳마다 다니면서 예산책정에 대해 설명하고, 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예산 심의가 있을 때마다 이메일 조사를 통해 시민의 의견을 접수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보스톤 청년 위원회를 재건하고자, 수백명의 보스톤 청년들을 시청에서 열리는 예산청문회에 초대하는 등 갖은 노력을 보였습니다.
시장 중심의 정부에서 시의회 의원의 역할에는 많은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후보는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보스톤에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노년층을 위한 재산세 면제, 공영 주택 경비원들의 일자리 보장, 그리고 치안유지를 위한 혁신적인 ‘안전을 위해 5센트 투자하기(Nickel for Public Safety)’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젊은이들의 시정참여를 유도하는 등 윤후보의 시의원 활동 경력은 그를 보스톤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리더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윤후보는 보스톤이 필요로 하는 변화를 일으키고자, 또 보스톤을 21세기로 나아가게 하고자 시장선거에 출마합니다. 그는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에 직접 부딪히면서 대담하게, 또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직면해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윤후보는 현재 아내 티나와 아들 나단, 딸 나오미와 함께 도체스터 지역의 필즈코너에 살고 있습니다.









